초록 앞에서 / 전상순
이끼 헤치며
봄물에 슬며시 나오는 물방개
갇혔던 맑은 물, 방파제 골 사이로 앞다투어 흐르는 광경에
깜짝 놀라 물살 따라 덩달아 뛰고
들판엔 초록여신이, 누구든 쉴 수 있는
겨우내 비축해둔 푸른 기운을
한꺼번에 밖으로 내보낸다
나도
어린싹 앞에 해의 바람결에
너덜한 부스러기 깎아
뭉긋한 성질의 능선을 걸어
순수 앞에 유순함 앞에 나아가야지
늘 엄살로 버티던 일상에
푸른 살대를 붙여
쓰러져가던 몸체가 바로 서는 일
살찌는 상상
갠 날로
이승에 살아있다는 시늉만 내어도
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온풍이 있어
목숨의 불멸을 노래할 수 있다네.
시집 [등] 중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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