가을이 다 지나간다니 / 전 상순
지진에도 강할 것 같은 대나무 길을
실안개 헤치고 한참 걸었습니다
걷다 보니
어느덧 가을의 끄트머리
감성을 먹고사는 가을의 신神이여,
올가을이 다 지나간다니
왜 이리 서운할까요
붉게 타는 편지 한 통도,
가을비에
눈물 한 방울 떨어뜨려 보지도 못했는데
가을이 가려 하네요
통나무로 만든 멋스런 길도
가을도 타보지 못했는데
벌써 입동 준비 서둘러야 하니
더 깊은 곳으로 바삐 갈 걸음 멈추고
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
만남 없는 약속에 맨송한
옷장에 그대로 있을 옷가지 꺼내어
가족과 혹은 혼자서
눈과 눈썹 거리만큼 가까운
목석초화木石草花 어우러진 곳에라도 가서
햇무리 받아야겠어요
마음 구석구석 다 녹여
온몸 따스하다 전해 줄게요
잘한 일이라 전해 줄게요.
시집 [천년의 사랑] 중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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