봄엔 / 전상순
봄엔
이른 아침 등굣길에
다리에 달라붙은 밀 물방울 터느라 분주한데
코 흘리는 남학생까지 따라와
뭐 때문인지 묻지도 않은채
마냥
다시 냇가로 머리카락 날리며 도망치네.
여름엔 / 전상순
여름엔
황토물 타고
미꾸라지가 우리 집앞까지 와줘
맨발로 마중 나간 주전자가
제일 크게 웃었네.
가을엔 / 전상순
가을엔
한 고랑 고구마 줄기같이 이어진
언니 오빠 동생이 모두
들녘에서 분주한데
어머니는 쓰러진 벼 닮은 나를
만날 공주대접 하시니
나락 위 눈초리 올라간 도마뱀도
흘깃하며 지나가네.
겨울엔 / 전상순
겨울엔
오빠가 까불며 만든 스케이트
나도 좀 타보자고
신나하는 순간
얇은 얼음판을 기차게 알아내
퐁당퐁당 잘도 빠졌지
밤새도록
언 손발에 해삼이랑 담배알맹이 싸고 잤지.
시집[오늘에야 알았네]